이 소설은 사건을 서술하지 않는다. 대신 사건이 되지 못한 시간들을 기록한다.
한 아이의 가출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도망이나 결단의 서사가 아니라, 보호가 작동하지 않는 질서 속을 통과해 온 삶의 절차를 따라간다. 집, 가족, 학교, 국가, 군대—어느 곳에서도 폭력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침묵과 지연, 반복과 배치는 사람의 몸에 오래 남는 흔적을 남긴다.
『돌아오려 하기에』는 한 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도 그것을 개인의 사연으로 봉인하지 않는다. 떠남은 배신이 아니라 방향이며, 귀환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로 남는다. 인물들은 설명하지 않고, 감정은 곧바로 이름 붙여지지 않는다. 대신 피한 시선, 늦어진 손길, 멈춘 발걸음 같은 감각의 잔여들이 삶의 구조를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어떤 일들이 끝내 사건이 되지 않았는가”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지는 시간들 속에서, 무엇이 지워지고 무엇이 다음 삶의 조건으로 남았는지를 끝까지 묻는다.
『돌아오려 하기에』는 위로나 화해를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입장을 고수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동의하지 않음이, 여전히 기록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일.
도착하지 않은 것들의 시간표
제1부
중산간의 1년 — 파랑새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날들
1. 이은정의 말이 안 되는 기도 — 그래도 하나님께 한다
2. 말이 닿지 않는 쪽으로
3. 떠날 쪽으로 —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집을 통과하며
4. 이미 이동 중이던 아이 —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밤의 절차서
5. 도망이 아니라 편입 — 조용히 발급되는 출구의 번호표
6.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 출구가 먼저 알고 있던 이름
7. 떠남은 끝났고, 도착은 아직 — 중간의 절차에 머무는 법
8. 떠나지 않았는데, 이미 멀어졌다
9. 개찰 이후에 흔들리는 것들 — 삼화호의 새벽, 누워 있는 사람들의 절차
10. 통과한 사람 — 부두에서 삼도이동까지, 바다가 사라지는 방향
11. 낮은 문턱 — 주택가 한가운데, 한 줄로 배치된 집
12. 내창의 선을 따라 —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시스템을 통과하는 기록
13. 존이 내창을 건너려던 날
14. 젖을 짜지 못한 날 — 말이 없는 집을 통과하는 기록
15. 풀을 뜯는 동안에도 페이지는 넘어갔다
이 소설에는 사건이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끊임없이 어떤 일이 이미 일어나 있었음을 감지하게 된다. 『돌아오려 하기에』는 폭발이나 전환, 갈등의 해결로 서사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보호가 작동하지 않는 시간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몸에 축적되는지를 차분하게 기록한다. 이 기록은 회상이 아니라 절차에 가깝다. 기억은 감정으로 호출되지 않고, 배치와 순서, 지연과 반복의 형태로 돌아온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해석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으며, 독자의 이해를 요청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이 통과해 온 공간—집의 기울기, 방의 배치, 밤의 공기, 문턱의 높이—가 말한다. 감정은 뒤늦게 도착하거나 끝내 이름 붙여지지 않은 채로 남고, 그 자리를 감각의 잔여들이 채운다. 이 절제는 미학적 선택이기 이전에 윤리적 태도에 가깝다. 쉽게 말해질 수 있는 고통을 일부러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 소설은 고통을 소비 가능한 서사로 만들기를 거부한다.
『돌아오려 하기에』에서 떠남은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이며, 몸이 먼저 감지한 응답이다. 귀환 또한 완결이 아니라 미완의 상태로 남는다. 이 소설이 반복해서 보여 주는 것은 ‘도망친 아이’의 서사가 아니라, 사회와 가족, 제도가 만들어 온 침묵의 구조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조용히 이동되는가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중요한 질문은 “왜 떠났는가”가 아니라 “왜 그 자리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는가”에 있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위로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불편한 자리를 남긴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지는 시간들, 폭력이 없었다고 정리되는 삶의 구간들 속에 무엇이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은 개인의 윤리를 넘어, 우리가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유지해 온 질서 자체를 향한다.
『돌아오려 하기에』는 기억을 미화하지 않고, 고통을 설명하지 않으며,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소설은 하나의 태도를 끝까지 유지한다.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남기는 일. 그리고 그 자리가 문학이 될 수 있는지를, 마지막까지 시험하는 일.
백동인은 사건보다 상태에 관심을 두는 작가다.
그의 글은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보다, 일이 일어난 뒤에도 끝나지 않고 남아 있는 시간과 자세,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선택들의 배열을 기록한다. 그는 삶을 하나의 연속된 서사로 정리하기보다, 보호가 작동하지 않는 순간 이후에 몸에 남는 감각과 절차를 따라 문장을 배치해 왔다.
그의 소설은 종종 가출, 이탈, 이동, 배치와 같은 비사건적인 행위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탈출이나 결단의 서사가 아니라, 이미 한 번 균열을 통과한 사람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인물들은 감정을 고백하지 않고, 설명을 서두르지 않으며, 관계를 결론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대신 침묵, 유예, 반복, 머무르지 않음 같은 선택들을 통해 자신이 살아남은 방식을 드러낸다.
백동인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으나 건조하지 않고, 서정적이되 감정을 과잉 호출하지 않는다. 그는 슬픔이나 상실을 이름 붙이기보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를 남기는 데 더 관심을 둔다. 그의 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끝내 말하지 않았는가’이며,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삶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는가이다.
이 소설은 그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린 시절의 가출이라는 작은 이동에서 시작해, 개인의 삶과 국가의 시간이 겹치는 지점까지를 관통하며, 한 번 보호에서 이탈한 시간이 어떻게 이후의 모든 선택과 관계를 재배치하는지를 조용히 따라간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이해나 공감을 요청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어떤 문턱을 통과해 본 사람이라면, 잠시 서 있을 수 있는 자리를 남긴다.
백동인은 지금도 사건을 만들기보다는, 사건이 되지 못한 것들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완결을 향하기보다, 중립으로 돌아오지 않은 이름들과 함께 열려 있는 상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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