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보도블록 사이에서는 어느 해든 작고 작은 풀꽃들이 기를 쓰고 자라난다. 사람들이 덜 밟는 구석진 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낸다. 작고 작은 괭이밥, 민들레, 냉이, 씀바귀, 명아주, 바댕이, 쑥, 지칭개, 질경이, 보리뱅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풀꽃들이 구석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러다 뽑히거나, 밟히거나, 말라죽는다. 풀꽃들이 어떻게 삶을 버텨왔는지, 어떻게 삶을 꾸려 왔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월곡동 골목 한쪽에서 터를 잡고 평생을 살아온 내게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월곡동에서 오랜 동안 살아왔다. 오랜 동안 한 곳에서 살다보면 어느 곳에든 정들지 않은 곳이 없다. 좁고 어둑한 골목길과 주황색 가로등, 빨간 벽돌 담장, 하수구 구멍의 모양조차 눈에 낯익다. 오히려 이웃들이 낯설다. 이웃들은 아파트 시세 따라 지가 따라 유목민처럼 떠나가고 또 어디에선가 낯선 이들이 들어왔다.
글 실린 순서
골목길에서 만난 미용실 아주머니한테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컸다
한 많은 맨발의 사나이
“너, 귀찮지? 그냥 대충 살고 싶은 거지?”
라면이 정말 맛이 없어요.
오이가 바라본 골목길 풍경
내가 키운 빨간 토마토
땡볕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는 옥상 텃밭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댕강나무 꽃 향기
"급해서 그러는데요.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20년째 간병이라니
왜 혼자세요?, 물어보고 싶었는데
고양이 이웃과 분쟁
골목길의 미풍경
골목 정원
껄렁한 사과
“크아아알 갈아요오~, 크아알.”
폐지 모으는 할머니
미남 생선 장수
작가는 소시민의 힘들고 고단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가난하지만 부자로 사는 식당 쥔장 부부의 "밥 묵고 술 있으면 됐지 더 뭘 바라느냐"는 생활철학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수국'과 '고양이 이웃'에 관한 글은 동화처럼 아름답군요. 병고에 시달리는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빼앗긴 자식 얘기는 가슴이 아프네요. '메가폰을 든 상인'은 아마 고급 아파트 주변엔 얼씬도 못할 겁니다. "'크아아알 갈아요오' 할아버지"는 초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각박하고 인정이 메마른 사회라지만 작가의 재치 넘치는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훈훈했습니다. jw*****************|
월곡동 거주 40년 마을주민. 동화동시작가, 수필가, 시낭송가, 독서치료사, 수능국어논술전문지도강사, 마중물독서논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