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득, ‘여행(旅行)길’을 나서고 싶을 때
다음은, 이생진(李生珍, 1929~) 시인(詩人)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城山浦(1978)’라는 시집(詩集)에서, 발췌(拔萃)하여 엮은 내용(內容)이다.
“아침 여섯시,
어느 동쪽에나,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을 피운다.
태양은 수만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귀를 찢기었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고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어진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 감으면 보일 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 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거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나를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 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버린다.
내가 돈보다 좋아하는 것은 바다,
꽃도 바다고, 열매도 바다다.
나비도 바다고, 꿀벌도 바다다.
가까운 고향도 바다고, 먼 원수도 바다다.
내가 그리워 못 견디는 그리움이,
모두 바다가 되었다.
끝판에는 나도 바다 되려고,
마지막까지 바다에 남아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다가 삼킨 바다,
나도 세월이 다 가면,
바다가 삼킨, 바다로 태어날 거다.”
아마도 한국인(韓國人)들 대부분(大部分)이, 너무도 잘 아는 시작품(詩作品)일 것이다. 문득, ‘여행(旅行)길’을 나서고 싶어진다. 그런데 수십년(數十年)의 체험(體驗)에 의(依)하면, 필자(筆者)에게 있어 ‘여행(旅行)길’은, 하시(何時)라도 의식적(意識的)으로 인식판단(認識判斷)하고서, 나서본 적은 없는 듯하다. 그야말로 매번(每番), 시나브로 어느 순간(瞬間), 배낭(背囊) 하나 달랑 매고서, 야간버스(夜間bus)에 승차(乘車)하거나, 새벽기차(汽車)에 탑승(搭乘)하고 있는 경우(境遇)가, 거의 대부분(大部分)이었다.
-하략-
목차
인문학여행(人文學旅行)
인문학여행자(人文學旅行者)
제2권
1. 문득, ‘여행(旅行)길’을 나서고 싶을 때
2. ‘그리움’이라는 여행(旅行)
3. ‘시공간(時空間)’이라는 여행(旅行)
4. 생명(生命)이라는 무늬, 인간(人間)이라는 무늬
5. 또 한 번(番), ‘설날’을 맞이하며
6. 자유(自由)롭고 행복(幸福)한, 그대를 위(爲)해
7. ‘나’의 인생(人生)을 살아내며
8.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9. 설날 전후(前後), 세한(歲寒)의 추운 겨울날에
10. 세월(歲月)이 가면
지은이 탁양현
<인문학 에세이>
<삶이라는 여행>
<노자 정치철학>
<장자 예술철학>
<주역 인간철학>
<니체 실존철학>